작은애 하나, 둘, 셋. 큰애 하나, 둘. 정확히 이번 여름에 뿌린 수십개의 옥수수 중 5 아이만이 살아 남아 옥수수 수염을 드리우고 있다.그나마 작은 아이들은 채 열매가 영글기 전인데 (우리의 편의에 맞게) 거둬야만 한다.
더울까 마를까 노심초사하던 옥수수 다섯 그루는 이날로 송두리째 뽑았고 미지초들을 걷어낸 후 김장용 채소들을 심기 위해 가지런히 흙을 골라 놓는다. 감자가 있던 자리, 들깨가 있던 자리, 시금치가 있던 자리는 이제 무, 배추, 상추가 자라날 땅으로 둔갑한다. 식물들의 수명과 상관 없이 우리가 제때에 새로운 것들을 뿌리고 거두기 위해 그들의 생존을 결정하는 것이 괜찮을까? 싶기도 하다. 들과 산에 난 열매들을 채집하던 태고적 사람들도 씨를 뿌려 거두는 농업을 하면서 나와 같은 기분은 아니었을까.
예상하고 있었는데 3월부터 8월까지, 주말 마다 세 사람이 들인 공에 비하면 손에 쥐어지는 열매들의 양은 보잘것 없다. 한끼 요리해서 각자의 입에 탁탁 털어 넣으면 땡일 정도이니. 어쩌면 실망스럽기도 하고 기운이 빠지는 일이다. 내 생존과 상관 없이 벌여놓은 일이라 날씨에 발 동동 구르며 주말마다 30분씩 하는 발걸음에 힘이 빠질 만도 하다. 땅의 탓도, 하늘 탓도, 경쟁심을 부추겨주지 않는 옆의 버려진 땅 주인들 탓도 해보지만, 난 결국 나를 돌아보게 된다.
모래알 같은 씨에서 생명이 자라나는 과정을 지켜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하다가 그들의 생존이 내 손에 달려 있다고 여긴다. 비가 많이 오면, 너무 해가 뜨거우면, 영양분이 부족하면, 내가 물을 주고 미지초들을 제거해 주고 거름을 주어야만 한다. 뿌린 만큼의 책임을 지지 않을 때 찾아오는 마음의 짐은 몸뚱이 아픈 것에 비해 어처구니 없이 크다. 같이 밭을 하는 친구들이 나와 같지 않음을 잊고 그들도 똑같은 양의 짐을 지기를 바란다.
내가 씨를 뿌렸을 뿐, 식물들은 자신들만의 속도와 힘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일방적으로 관계를 만들고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려고 버둥거리는 모습을 지금 보고 있다.
이 작태를 당장 바꿀 수도, 바꾸고 싶지도 않다.
그저, 지켜볼 뿐.



덧글
옴 2011/09/01 07:01 # 삭제 답글
여행간 사이 가을작물들 성큼 크겠네요. 저는 초봄 밭이랑 여름 지난 밭이랑 너무 생긴게 달라지고 옆 밭들도 달라져서 길을 잃은 기분 마저 들더라고요.
kuna 2011/09/02 23:46 #
제발 컸으면 좋겠어요! ㅋㅋ; 우리도 밭입구 풀이 너무 무성해 길을 잃고있지요
당고 2011/09/01 10:22 # 답글
음-뭔가 인생이 느껴지는 포스팅.
올해 농사는 크든 작든 잘 짓기가 어려웠을 거 같아요. 이놈의 날씨 때문에.......ㅠ
kuna 2011/09/02 23:47 #
날씨의 덕은 무시할 수 없지롱요. 일년도 안한 농사에서 별걸 다 느끼고 유난이다 싶기도 해요 -_-; 이럼서 주말여행온 난 뭐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