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의 카드. 발광.發光 혹은發狂


2011년 내 여신카드는 Juno 이다.
Juno 는 tradition (전통)을 키워드로 가지며 로마시대 여성들의 출생에서부터 죽음까지 모든 중요한 순간들을 관장하고 돌보는 명예롭고 권위있는 여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기존의 사회 구조를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하며 따라서 이 카드가 나왔을 때에는 결혼이나 그와 비슷한 안정을 추구함을 뜻한다. 2011년 초, 이 카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했는데, 영험한 타로 텔러의 말을 듣고 바로 깨달은 바가 있다. 별자리는 천칭자리 (균형과 안정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함)이고 운명의 카드는 Athena (Justice)인 내게, Juno 라는 카드는 그만큼 강력하게 안정과 휴식을 추구해야 하는 시기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는다던가 벌이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상황에서 내면의 평화와 휴식의 기회를 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카드의 메시지를 받들어 철저히, 심심해 보일 만큼 안정적인 생활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텃밭을 일구다 보니 주말이나 휴일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일이 줄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보다는 땅을 만나는 시간에 평화를 얻었다. 회사에서 벼르고 별러 얻어낸 휴식 기간에도 모험 보다는 내 몸에/ 마음에 달게 느껴지는 것들을 찾아 즐기는 데 집중했다. 그러면서 어느새 내면의 아이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무의식 뿐만 아니라 내 입을 통해, 글을 통해 존재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5분, 아니 4분 후면 시작될 2012년, 내 여신카드는 Venus 이다.
Venus는 너무도 명백하게 사랑의 여신. 타로 해설집에 따르면 하늘과 바다의 행복한 결합을 뜻할 정도로 강렬한 relationship (관계)에 대한 카드이다. 기존 관계에 대한 열정과 새로운 깨달음을 불러오거나 매우 중요한 관계의 형성을 뜻한다. 혹은 예술적인 것들 혹은 창의적인 것들의 탄생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마침 나는 새로운 나를 만나려고 준비중임을 깨달아 가고 있다. 또한 기존의 사람들과의 관계가 돈독해짐과 함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중이다. 매우 안정을 추구하는 본성이 강한 나에게 이번 해는 카드 제목과 달리 고통스럽고 힘겨울지도 모른다.  아무리 봐도 "새로운" 것들이 뚝딱, 나오진 않을 것이므로, 그에 버금가는 과정을 거쳐가야만 할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시기가 온 것 같다는 생각으로 날 달래보며.. 


무쪼록 여기 잠시라도 다녀 가는 블로거 분들 건강과 평화가 항상 함께 하기를. 

1년 동안 고생 많이했다! 고 나에게 얘기해봅니다. 
토닥토닥토닥. 




 

대신 열폭해주는 관계 발광.發光 혹은發狂




처음부터 끝까지 오프에서만 친한 사람이 있고, 온라인에서나 오프에서나 딱 고정도만 친한 사람이 있고, 온라인에서만 친하고 오프에선 서먹~한 사람이 있고, 뜨문뜨문한 오프 관계를 따끈따끈한 온라인 관계로 유지하는 사람이 있다. 굳이 온라인/ 오프라인으로 관계를 규정지어 보는 것도 재미있다. 그만큼 직장이란 곳에선 8시간 이상 온라인으로 하는 소통이 간절하니까. 고 시간대에 연결되는 사람들은 특별한 소중함이 있다.

그 중 여러가지 상황상 뜨문뜨문 오프 관계를 따끈따근 핫라인으로 유지하고 있는 R 이라는 친구가 내게 있다. 근래에는 R 의 연애사가 집중 이슈인데, R을 심하게 감정노동에 빠져들게 하는 인물이 있다. 왜 너랑은 꼭 좋은 관계로 남고 싶고, 어색해지면 절대 절대 안된다고 하고.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과 연애는 하지 않으며 은밀한 맥락으로 희망고문을 하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이는 나 또한 겪어본 지옥의 고통이기에. 오히려 담담하게 이 상황을 얘기하며 웃는 R 대신 폭풍 분노를 일으켰다. 그래도 R 은 여전히, 이를 어쩌리요, 나를 잡아 잡수, 라는 식이다. 너무 심하게 했나, 하고 살짝 눈치를 보고 있는데 R 이 다시 말을 건다. R의 다른 절친R2 에게 내가 그녀를 대신해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고 전하니 R2는 풋, 하고 웃으며 말했다 한다.

"K 가 네 일에 그렇게 열폭하는 걸 보니 그녀도 자기 자신의 일에는 그다지 열폭하지 못하는 스타일이구나?"

막상 내 일에는 열폭하지 못한다.

나: 맞네. 맞네 그려. 허얼.
R: 그래서 우린 서로 대신 열폭해주는 관계라고 그랬어.
나: 우하하하. 정말이야. 내년 과제로 자신의 일에 열폭하는 한해를 삼아볼까?
R: 좋은 생각이네. 자신의 일에 좀 더 분노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보자구.

그렇다. 나와 R은 뜨문뜨문한 오프 관계를 핫라인으로 유지할 뿐 아니라 서로를 대신해 열폭해주는 관계이기도 하다. 날이 갈수록 자아 보살핌/내면 보살핌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진단은 슬프다. 아, 아직 살펴보지 못하는 부분이 있구나. 한편으론 어떤이가 나 대신 돌봐주고 있는 부분들이 많이 있구나. 구석구석 나의 손과 눈이 손이 닿지 않아도, 애정어린 눈길로 따스한 손으로 보듬어 주는 이들이 존재해서, 내가 살아가고 있구나. 그래서 다행이구나. 미안하고 고맙구나. 

내년에도 R 과는 비슷한 대화들을 하며 서로를 위해 분노하고 화를 내고 있을 것이다. 아마 조금은 각자에게 알아서 화를 내고 감정을 표츌하도록 독려하면서. 그리고, 난 좀 더 고마워하면서. 암튼간에, 내 일에 잘 열폭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2011년. 발광.發光 혹은發狂



제목에 2012년이라고 쓸 뻔 했다. 이미 다가오는 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거나, 숫자 따위야 별 상관 안한다는 식일지도.

*텃밭농사
손에 흙을 묻히는 즐거움. 사람 외의 생명체와 소통하는 즐거움. 그리고 그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연습을 해보았다. 일반적인 농사 자료나 글을 보면 사람이 중심이 되어, 사람의 힘으로, 흙에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미지초들을 뽑아 주고 거름을 주어야 밭이 존재하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그들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데 내가 그 흙에 생명이 자라나주길 바라며 터를 제안하고, 도움을 주는 것 뿐이다. 그리고 땅이 내어 놓는 생명체의 일부를 감사하며 얻어가는 것 뿐이다. 유심히 관찰하고, 대화하고, 그 과정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어떤 곳에서 무엇을 기르던 간에 즐거울 수 있다.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거름과 영양분을 이만큼 제공했는데 왜 수확이 이정도 밖에 되지 않는가, 를 고민한다면 차라리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드는 편이 정신&신체 건강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아, 그래서, 상업 농사는 아무래도 못할 것 같다..대신 누가 땅 한뼘이라도 공짜로 주면 정성껏 그와 소통하고 살아갈 자신이 있다.)

*희망버스
트위터를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김진숙이라는 사람이 한겨울에 크레인에 올라갔다 하여 마음이 쓰였다. 거기선 사과도 고구마도 다 꽁꽁 얼어버린다는데, 그리고 거기선 이미 두명이나 죽었다는데, 어떻게 하려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그래서 안부 인사도 하고 열심히 말도 건냈는데 가만 보니 아주 아주 오래전 시작된 소용돌이의 한가운데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가장 유쾌하고 침착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엄청나게 많은 추모사를 쓰고 같이 울고 싸워왔다. 그 소용돌이는 내가 부모님이 준 돈으로 편하게 학교 다니고 공부하고 놀러다닐 때에도 존재했고, 난 이제사 그 한켠에 접어든 느낌이다. 그리고 이제는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다. 투쟁구호도 입에 익히고, 철야(집회)에 뭐가 필요한지도 알고, 국가의 폭력이 어떤 것인지도 체험했으니.

*휴식
돈을 버는 일에 대해 불평할 생각은 없다. 살아가야만 하니까, 그리고 돈이 있어야 어떤 꿈을 이룰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 일때문에 내가 무너져가는 모습을 모른척 하고 싶지 않다. 그건 나에게 미안한 일이니까. 어딘가 몸 한구석이 잘못되어 갖는 휴식은 진정한 휴식이 아니다, 유배다, 벌이다. 이제와 생각하면 결코 충분하지 않은 2개월의 시간. (하지만 그런 시간을 갖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현실에서 억지로 감지덕지한 척을 해야만 하는)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도 잘 모르는 사람이어서 더욱 나에게 미안했고 울고 있는, 연약해져 있는 내 안의 아이를 돌보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을 깨달은 2개월. 잊지 말자. 아직 그 아이는 울고 있는 것 같아. 

*삶의 기반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그냥 '집'이었지. 지금은 우리 '동네'다. 여기서 생활하고, 관계를 맺고, 활동하고, 정착하고 싶다. 밤 늦게라도 급하게 만나 차 한잔 술 한잔 나누며 고민을 털어놓고 토닥토닥을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고. 남는 텃밭 수확물을 걸어다니며 나눌 수도 있고, 강**가 아직 당당하게 간판을 걸어 놓은 것에 함께 분노하고 소리 높일 수 있고, 그냥 여기저기 저기저기에 그들이 살고 있다는 것 자체 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런 동네에 살고 있으니까. 


*12월
12월은 덤, 이라는ㄷ의 말처럼 보내는 것이 나의 12월이기도 한데 그런 여유를 방해하는 것들이, 아니 사람들이 있다. 올해 내내 청소년 인권활동가들이 얼마나 열심히 서명지를 받으러 다녔는지, 얼마나 열심히 활동을 했는지, 그 결과가 유효 9만7천 (실 서명지수 10만 이상) 서울 시민의 서명이라는 것을, 서울시 교육위원들만 모르는 것 같다. 서명 받을 때도 수많은 어른들이 서명지를 찢어 던지거나 욕설을 퍼붓거나 폭행을 하기도 했다는데, 그 굴욕을 참으며 서명을 모아서 내면 다 될 줄 알았는데. 이젠 영하 10도에 이르는  돌바닥에 앉아서 거들떠 보지도 않는 위원님들 앞에 머리를 숙여 부탁하고 있어야 하니 농성장은 청소년 활동가들의 눈물 콧물이 넘쳐날 수 밖에. 덕분에 이 주말, 은박지 한겹 깔아놓은 농성장에 앉아 퐁당퐁당을 개사한 노래를 다같이 돌림노래로 부르고, 이불을 둘러쓰고  원안통과 찬성 위원나으리들껜 응원의 문자를, 반대 위원나으리들껜 압박의 메시지를 보내고 돌아왔다. 원래 12월엔 뜨듯한 집구석에서 직접 담근 생강차나 글루바인을 마시며 바느질을 하고 독서를 하는 것이 내 계획이다. 이걸 얼굴 뷥기도 힘든 나으리들이 망쳐놨다. 책임져라 이놈들아. 아니 니놈들이 책임지고 원안통과를 시키는 것만이 내 12월을 보상할 수 있을 거다.

농성장에서 만난 J 님은 하루 철야를 했는데 발바닥에 핫팩을 붙이라는 충고를 듣지 않아 매우 힘들게 밤을 보냈다고 한다. 아, 저는 철야 (농성장에서 밤을 새는 것, 을 J 님은 철야라는 단어로 축소해줬다.) 는 희망버스때 밤새 비맞으며 해본 게 전부라 그땐 핫팩이 아니라 쓰레빠가 절실했다, 는 이야기들을 웃으며 주고받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뭔가 비슷한 선상을 걷고 있는 느낌의 2011년이다. 뫼비우스의 띠는 아니겠지. 비슷하지만 또다른 선상으로 발을 옮겨가는 중인지도.





김치독립만만세. ...........흙.


배추를 20여포기 심었는데 5~6개 빼고는 모두 애기들이다. 그나마 속이 다 찬 것들은 한 개도 없다. 무는..눈에 넣어도 안아플 만큼 귀엽게 자그마하다. 제일 큰 무가 내 손바닥 절반 정도. 어떤 연유인지는(농사 새내기라는 명확한 연유 말고는) 알 수가 없다. 어쨌든 이번 주말엔 영하로 떨어진다는 소문이 파다하고 여기저기서 이 때에 맞춰 김장을 한다니, 배추가 손바닥만하든 머리통만하든 김치를 해보리라, 무수한 의견 교환 끝에, 결정. 

토요일 오후에 배추와 무, 쪽파, 파를 그자리에서 뽑아 다듬었다. 내가 평소 존경하고 애독하는 올빼미 텃밭 농부님의 조언에 따라 뿌리며 시든 잎등을 정리해 집에서 나올 음식물 쓰레기를 최소화 한 후 밭을 마감했다. 아..작년 3월에 만났던 그 땅. 하지만 뭔가 다른 그 맨땅이 드러났다. 휑휑한 흙들이 드러났지만 그때와는 다르게 숨쉬고 있는 것 같고, 우리를 아는 척 하는 것만 같고. 이제 내년까지 잘 지내보자, 땅아. 고생이 많았어. 

야채 더미를 거실에 버려 두고 가장 시급한 문제 발생. 황금과도 같아서 아무 곳에서나 사면 안되고, 어떤 불순물이 들어 있는지 알기 어렵고, 겁나게 비싸다는 고춧가루의 부족. 결국 생협 마감 10분전에 망원동 매장으로 출동. 하지만 너무 높은 가격에 좌절. 나중에 알고 보니 시중 마트에서 파는 것보다 쌌지만 500g에 2만3천원이라니. 여기저기서 고춧가루를 그러모아 보기로 하고 망원 시장을 거쳐 식후 산책을 즐기는 두 사람과 인사, 인근 까페에서 M과 접선, 오늘 거둔 파와 쪽파를 건네주었다. 헌데 M 이 뭔가 범상치 않은 작은 페트병을 흔들면서 다가왔다. 황금과 같은 고춧가루, 하필 오늘 먹거리가 없어 들고 나왔다는 그것. 만세 만세를 외치면서 첫날의 임무 완수! 


다음 날 아침, 수확에 참여하지 못한 H가 와서 안타깝고 귀여운 야채들을 보며 혀를 쯧쯧, 찬다. 그리고 무려 6,600 원을 주고 구매한 빨간 다라이에서 세탁을 시작한다. 김장을 담그기엔 속이 너무 안차서, 겉절이 식으로 김치를 만들기로 했기 때문에 아주 정성껏 씻어냈다. 화장실에 마주 앉아 배추잎을 흔들며 나누는 담소. 향기로와라. 그 사이 부엌에선 K가 그저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아주 훌륭한 양념 준비를 마쳐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야채 절이기. 땅에서 나온지 얼마 안되어 그런지. 아삭아삭하고 고유의 향이 살아 있다. 일부 배추잎으로 배추 된장국과 배추전이 준비되고. 야채들이 소금 사이에서 숨쉬는 사이 우리는 참으로 맛난 점심 식사를 한다. 

양념엔 양파, 홍고추, 생강, 마늘, 멸치액젖, 매실액, 쪽파, 찹쌀풀. 제법 그럴듯한 불그레한 빛이 나오자 우리는 K 를 장인으로 부르기 시작한다. 게다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양념 버무리는 손이라니. 사진을 찍었어야 하는데. 그때는 이미 허리가 휘어져가는 중이었기에.. 하여간 신기하게 3개월 동안 가꾼 무, 배추, 쪽파 등등은 이렇게 김치통안으로 쏘옥~. K 장인은 쉬지않고 남은 찹쌀풀죽을 이용, 파전과 호박죽을 만들어 내놓기에 이르른다. 경배 경배. 새로 담은 김치와 살짝 익힌 두부, 호박죽, 파전으로 이른 저녁을 마감하는 모양새가 밀레의 만종 못지않게 감동적이다. 그리고 수확부터 완료까지 24시간이 걸렸다고 계산한 나는 장렬히 전사하기로 마음 먹는다. 

머리와 어금니의 욱신거림 (피곤하면 어금니가 아프다.), 허리와 손의 욱신거림. 내년엔 조금만 더 풍요로운 농사를 지어 주변인들을 불러 일년에 단 한번 밖에 겪을 수 없는 욱신거림을 함께 하고프다..라는 것이 아주 아주 손톱만한 작은 소망. 엄마에게 김치 떨어졌어, 라는 아쉬운 말 당분간은 안해도 된다는 것도 참 묘하다, 어쩔 수 없이 으쓱으쓱 해진다. 어쩜  엄마에게 나 이제 김치줄 필요 없어, 내가 할 수 있어요, 라고 말하면 매우 슬퍼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어차피 어무니도 김장 안하신지 아주 오래..) 

텃밭 1년차, 우리의 추수 감사절은 오늘. 이었던 셈. 















왕자가 된 소녀들 ..바람.,


여성국극, 이라는 문화의 존재를 알게 해준 것은 '춘앵전'이라는 만화. 전쟁 직후 피폐해지고 메마른 사람들의 가슴에 오아시스와 같았다는 여성국극. 판소리, 창극 등이 아무 빛을 보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수많은 명창, 명악들이 모여 들었다는 여성국극단. 참말 묘한 그 매력에 빠져 수많은 여성들이 비틀즈의 팬 못지 않게 열정적이고 요란했다는 소문 아닌 사실. 심지어 현재까지도 아이돌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는 여성국극 배우들. 이 모든것들의 시작점에 임춘앵이라는 탁월한 예술인이 있었다고 한다. 그녀의 일생을 만화로 그려낸 작품이 춘앵전. 

너무 궁금했다. 그들은 실제로 어떤 사람들일까?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지낼까? 왜 지금은 젊은 여성 국극 배우들이 없는걸까? 등등. 최고의 인기 배우였던 임춘앵 마저 52세경 약물 중독과 신경 쇠약으로 급하게 세상을 떠난 것으로 보았을 때, 여성국극은 비극적이고 급작스럽게 사라졌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차에 나타난 작품, 60대~80대에 이르는 여성 국극 배우들의 삶을 보여주는  <왕자가 된 소녀들>. 

1950년대, 소녀들은 가난했고, 공부할 곳이 없었고, 결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중 발견한 곳이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국극단체였다. 여자에게 당연하게 주어지는 결혼, 출산, 돌봄 노동은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들은 변사또가 되어 관청 마당을 호령하기도 하고, 호들갑스럽고 유머 넘치는 마당쇠가 되기도 하고, 왕이 되어 발앞에 수많은 관료들을 거느려 보기도 하며, 자신이 사랑하는 연인의 품에 한껏 안기는 공주가 되기도 했다. 원하는 사람이 되고,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평생을 활개칠 수 있을 것만 같은 무대가 바로 여성 국극단이었다. 부모님이 뒤늦게 극단에 쫓아와서 몽둥이를 휘둘러도, 야금야금 가진 돈을 탕진해도, 남편 없이 극단에서 동료들과 아이를 길러도,그곳을 떠날 수 없는, 팔자라고 여긴 왕자들이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유신 체제에 들어서면서 극도로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는 여성 국극을 순식간에 "전통 문화의 기형", "씻을 수 없는 오점" 이라는 비유를 통해 몰아붙였고 이를 틈타 여성 국극단에 몸담고 있던 대부분의 남성 예술인들은 등을 돌려 국가의 주요 문화 기관의 주요 자리를 차지했다. 그들이 여성 국극의 활성화나 지원에 관심을 둘 여지는 없었다.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된 영화 문화도 무시할 수 없는 여성국극 쇠락의 원인이었다. 돈을 모을 줄도, 돈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여성 국극인들은 생계를 위해 뿔뿔이 흩어져 가고 몇 몇 배우들은 당시 유행하던 요정에서 국악 연주나 노래로 밥을 벌어 먹어야만 했다. 

그래서. 부모님들의 뜻에 따라 억지로 결혼했던 그녀들은 그걸로 끝이 났다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를 기르며 쥐죽은 듯, 지냈다고 한다. 그런데 20여년 후 그들은 다시 모였다. 모여서 무대에 오르고, 기획을 하고, 후악(후배)들을 모집하고, 한달에 한번 팬 모임과 같은 시간을 갖는다. 큰 무대는 물론이고 지역 잔치에 이르기 까지 그들은 무대를 가리지 않는다. 무대 뒤에서는 쑤시는 관절 때문에 신음하고 떨리는 손으로 화장을 하고, 차오르는 숨을 가듬느라 고달프지만, 어떤 무대에서든, 그녀들은 눈을 번쩍이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춤을 추면서 날아 오른다. 

나는 아직 꿈을 꾸고 있다, 그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고 그녀는 말한다. 늦지 않았으니, 자신들에게 오라고, 어떤 역이든 무대에 오를 수 있을 때 까지 어떻게든 훈련을 시켜 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여전히 무대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왕자가 된 소녀들 (2011)
김혜정 감독


덧1. 같이 본 친구는 안타깝다, 슬프다 얘기를 했는데. 그것보다 난 그녀들의 반짝임, 살아있음에 감동했다. 물론 이제 많은 여성국극배우들이 세상을 떠나시거나 병으로 무대에 오를 수 없다. 젊은이들을 가르쳐서, 그 무대 뒤에서 도와야 할 나이에도 여전히 왕자로 살아가고 있는 그 존재 자체가 나에겐 감동. 

덧2. 국극단에 보통 40~50여명의 여성들이 함께 먹고 자고 공연하면서 저절로 평생 같이 사는 "친구"인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미국이라던가, 국내에도. 그분들도 만나 보고 싶다. 

덧3. GV에 세분의 국극 배우 선생님들이 오셨는데, 명창으로 손꼽힌다는 이옥천 선생님의 자연스런 에스코트 동작을 보고 그녀들은 무대 뿐만 아니라 이미 온전히 왕자임이 확 다가왔달까.  

덧4. 아직도 팬들이 공연 때마다 대기실에 상다리 부러지게 음식을 준비해주곤 하는데. 정말 당시에는 비틀즈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셨을 분들. 아...나도 그때로 가보고 싶다. 

덧5. 공동체 상영도 가능하다고 하며. 꼭 일반 상영관에서도 보고 싶다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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