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공기 ...........흙.


여름의 기운은 땅에서부터 올라왔다. 젖은 흙냄새. 고작 2시간 남짓 엎드려 있었을 뿐인데 어질어질하고 당장 길게 몸을 뉘여 쉬고 싶다. 묵묵히 임시로 고정해둔 토마토 지지대의 끈을 끊어내고 가져온 지지대를 세운 후 끈을 묶는데 땅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이러다 손부터 끌려 들어가 발을 하늘로 향한 식물이 되어버리면 어쩌나. 봐줄만한 식물이 되려나? 그새 피어난 노란꽃과 열매가 정신줄 놓지 않게 해주었다.

이번에는 잎채소들을 좀 더 심었다. 씨를 직접 뿌린 것과 모종을 사다 심는 것은 자라는 속도의 차이가 엄청나다. 그래도 눈에 뵈지도 않던 것들이 땅을 깨고 올라와 거듭 옷을 벗어내는 모습이 경이로와 끈질기게 씨를 뿌려본다. 아욱이며 상추들은 제법 줄을 이어올라와 솎아 주었고 시금치도 아직 벌레들의 입을 타지 않고 있다. 들깨는 뿌린 후 씨가 떠내려갔는지 당근이랑 함께 치열하게 잎을 틔우는 중이다.


가지와 토마토, 고추는 처음 시도한 신문지 멀칭 탓인지 도도하게 서서,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다는 듯 자라나는 중이다. 가지는 처음이라 어떤 모양으로 변할지 기대가 된다. 토마토, 감자는 순을 많이 쳐주었다. 초롱같은 감자꽃도 곧, 이다.






5월: 신문지 멀칭, 토마토, 가지, 고추 모종 심기와 완두콩 지주 세우기 ...........흙.


텃밭에서 애로사항이 없어서 그런지 지난해 만큼 일기가 열심히 써지지 않는다. 역시 일기는 힘들 때 찾게 되는 것인지.
이제 밭에 물을 길어다 나를 필요도 없이 호스가 여기저기 널려 있고, 밭 입구에선 모든 모종을 판다. 퇴비 모으는 통과 오줌 액비 모으는 통도 있어서 가을에 퇴비 걱정을 할 필요도 없다.

지난 해 열악한 토질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무성한 풀 때문에 옥수수를 구분해 내기 어려웠던 고통을 되새기며 신문지 멀칭을 시도했다. 그런데 요새 신문이 희귀하다. 지하철에선 순식간에 폐휴지 모으는 분들이 거두어 가고, 대부분 인터넷이나 트위터로 뉴스를 대신하니. 결국 본가에서 ㅈ 일보의 신문을 일부 구했지만 턱없이 부족. 다행히 올해 같이 텃밭을 하게된 M 님이 사무실에서 구해 호치키스로 신문을 이어 돌돌 말아 오셨다.

고추, 가지, 토마토는 모종이니까 신문지를 죽죽 깔고 흙과 돌로 고정시킨 후 그 위에 구멍을 뚫고 물을 준 후에 그들을 잘 심어주면 완성.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고 효과적으로 풀매기 노동을 줄여줄 수 있을 것 같다. 가지가 익어가는 풍경이라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벌렁거린다.

아욱, 상추, 들깨, 당근은 아직 자세히 들여다 봐야 구분될 정도의 모습을 드러내셨다. 완두콩은 쑥쑥 자라서 벌써 덩쿨손을 내밀어서 지지대를 당장 대령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한번 잡으면 착 감기긴 하지만 굵은 가지는 버거워 하는 것 같아 엄선한 나무들을 다시 골라 바쳤다. 감자도 무럭무럭 신호를 보내어 다음 주에는 가지치기를 해주면 될 것 같다.

모든 것이 순탄하다. 한단계 높은 과제를 받아도 좋겠다, 라고 감히 종알거려 보기도 한다.
단 봄날 해의 기운은 강력해서 반나절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일요일을 보내는 중이다.


아파트. 발광.發光 혹은發狂


대학 입학 하자마자 서로 나눴던 질문 중 하나는 어디사냐,였다. 강남 모처의 동네 이름을 듣는 순간의 다양한 반응들. 밥 사줘/ 잘 보여야 겠다/ 부모님이 부자신가봐/ 부르조아네/ 등등.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살고 있는 동네의 이름이 왜 내 취미나 성격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는지도 모르겠고 뭔가 그들에게 큰 빚을 진 기분에 그 후로는 가급적 사는 곳을 밝히지 않으려 애쓰곤 했다. 시장도 없고 똑같은 이름을 단 수십, 수백여개의 아파트만 가득한 그곳. 평화롭고 여유 가득한 표정으로 걸어다니는 사람들. 무료함과 단조로움이 가득한 그곳이 나의 동기들에겐 어떤 의미였을까.

그 아파트가 한국에서 갖는 의미에 대해 진지하고 명쾌하게 연구한 책이 발레리 줄레조의 '아파트 공화국'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해 프랑스 모처에서 o의 언니댁에서 발견했는데 밤을 새서 읽다 아쉬워하며 손을 놓고, 한국에 돌아와 마쳤다. 발레리 줄레조는 프랑스의 지리학자로 한국에 방문했다가 마치 군사기지를 방불케 하는 아파트 단지들에 충격을 받고 이에 대한 연구를 논문으로 썼다고 한다. 그 후 지속적인 한국 공간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으며 최근 주제는 노래방, 비디오방 등 "방 문화"라고 한다. 이런 사람이 진정한 학자가 아닌가, 감탄하며 다른 책들도 읽어볼 수 있기를 고대한다.




-재개발은 기존 주택을 불도저로 밀어낸 후 소단지를 차례로 이식하는, 흡사 외과적 수술 방법처럼 진행되었다.

-재건축이나 재개발단지의 출현은 사회 구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한편으로 해당 지역에 인구 조밀화와 도심 재활성화를 부추겼다. 다른 한편 하층 계급을 도심에서 밀어내게 되었고 이들이 정착하게 될 도시 주변 주거 공단의 확장으로 이어졌다.

-국토의 빠른 개발과 변모를 경험한 사회가 갖고 있는 공통적 특징은 '새 것에 대한 맹목적 숭배'로 나타난다.

-서울은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달려 나가고 변화하고 있으며 현재에 멈춰설 수 없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확실히 서울은 지리학에 저항하는 도시이다.

-한국의 아파트 단지는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처럼 끊임없이 질주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대한주택공사는 프랑스적 의미의 국민주택 건설에 이바지한 기관이었다기 보다는 박정희식 경제성장 모델에 순응하는 정부 정책의 시행자였다.

-아파트의 대규모 건설 공약은 계속되었다. 분명 대규모 주택의 공급은 적어도 상징적으로는 발전의 표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허울뿐이었다. 공공재정의 역할은 미미했지만, 한국인들은 정부 정책에 부응해 주택 구입의 재정적 부담을 받아들였다.

-1971년 유신헌법에 이어 1972년 주택건설촉진법이 공포되었는데, 이를 기점으로 국가가 주도한 본격적인 아파트단지 건설은 권위주의 체제를 견고히 하는 효과를 낳았다.

-한국의 건축가들은 주택문제에 흥미를 상실했다. 무엇보다도 건설 시행에 있어서 자신들이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대단지 아파트로 대표되는 한국의 주택 문제에 대해 대다수 건축가들과 지식인들의 입장은 모호함을 그 특징으로 한다.

-외형적 관점에서 아파트는 여러 계층과 범주로 이루어진 중간계급 일반의 주거지임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상류사회적 형태로 인식되는 것이다.

<아파트 공화국> 발레리 줄레조 지음, 길혜연 옮김.

자유의 봄. ...........흙.


텃밭에 감자를 심고 요새 중독 증세를 보이는 동네 모 제과점 모카빵을 한참 탐하다 잠이 들었다. 이미 해가 졌고 아무도 없는 저녁엔 맥주 한캔에 소세지를 먹기 마련이었는데 애인의 식습관이 물들었는지 과일 쥬스에 치즈 샌드를 오물거리며 만화책을 정독한다. 이런 주말이 오래간만인 듯 하고 어색하기까지 하다. 근 두달 여 동안의 긴장감과 초조함이 드디어. 사라졌다. 아니 그 원인이 사라졌다, 만세.

작년의 밭은 자유로운 대신 수도도 없고 황량하기까지 했는데. 우여곡절 끝에 얻은 올해, 땅에는 무려 수도 시설이 있고 입구에선 갖은 모종과 씨앗을 팔고 있다. 아이들이 꺅꺅 거리며 돌아다니고 몽실몽실한 강아지도 두마리나 있다. 가족적이다. 땅은 적절히 포슬포슬하며 촉촉하다. 무려 땅 앞에 팻말이 있고 이름도 써있다. 텃밭의 신세계, 접수.

작년 가을 여행길 어디선가 얻어온 봉숭아 씨앗도 구석에 뿌려 두었다. 운이 좋으면 엄지 발가락과 새끼 손가락에 고운 물을 들일 수도 있겠다.



나의 봄은 흙과 함께 온다 ...........흙.



올해의 봄은 아무래도 밭의 터전이 마련되는 순간, 오려는 속셈이 분명하다. 원래 남의 것이지만 내 소유인 양, 당연히 내게 머물러 있을 줄 알았건만 순신간에 빼았겼고, 그렇다면 내 자본으로 새로 마련하마 마음 먹은 곳의 실질적인 주인은 또 따로 있었다. 인연을 만나듯, 땅도 만나야 하는가. 짚신에게도 있는 짝이 때가 되면 나타나듯, 봄도 당신이 마음 먹은 때 나타나듯, 땅도 그렇게 나타나는가. 

겨울에 양파, 마늘 씨를 심고 짚단으로 덮어 놓고도 한 두 차례 심한 눈과 추위가 지났을 무렵. 이 땅의 주인들이 직접 농사를 짓기로 마음먹었다, 는 통보를 받는다. 그들 의도와는 달리 잘 운영이 되지도 않고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드나드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많은 부분이 정성껏 경작되고 가꾸어졌음을 볼 때 다 믿고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그에 대한 나의 첫 반응은, 속상해. 애써 겨울을 넘겼을 마늘 양파만을 두고 얘기한 것이 아니다. 그 땅에 마주앉아 나누던 에너지, 애정, 땀. 이런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아무리 땅의 주인이라지만 아무런 배려도, 양해도 없는 과정이 더 서러웠는지도 모르겠다.

도시에서 먹거리를 길러내는 땅을 찾아내는 일 자체가 운동이다. 아스팔트로 뒤덮여 있는 어느 한뙤기 땅 조차도 쉽사리 개인에게 허용되지 않는다. 이곳 저곳의 도시농부학교, 텃밭보급소 정보를 전전하다 한 도시농부학교 수업을 신청하여 실습과 이론을 병행하기로 결정했다. 비용은 작년의 몇배가 들어가지만 도움이 되는 공부를 하며 비슷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기회라고 생각했다.

실습 첫날. 그곳은 실습을 하기엔 미안할 정도로 잘 가꾸어진 밭이었다. 여러개의 아파트와 학교가 있는 중간 공터에 주민들이 짬짬이 일궈 놓은 곳임이 틀림없다. 아기자기한 모습의 이랑 고랑, 미니 비닐하우스, 그리고 작년 겨울 농작물인 시금치, 양파 마늘 등이 빈 틈없이 들어서 있었다. 그리고 그 농작물들이 있는 땅을 적절히 나눠 밭 모양을 만들었다. 밭을 함께 하는 H 는 분명 지역 주민들이 가꾸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구에서 공공재라는 이유 만으로 우리가 이곳을 사용하도록 한 것 같다고 했고, 나와  K도 동의했다. 일단 최대한 겨울 작물들을 피해 땅을 일구었고 H는 운영자들에게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했으나 별 공감을 받지 못했다. 문제의식과 개인 비용을 들인 만큼 순조롭게 농사를 짓고 싶은 마음이 충돌해 괴로움을 야기했다. 텃밭이 나에게 갈등을 제공했다. 

두번째 실습날. 내가 소독하지 않은 칼을 쓴 덕에 다 썩어가는 씨감자를 들고 밭에 갔던 H 와 K 는 금방 돌아왔다. 이날은 도시농부쪽 운영자와 주민으로 보이는 한분이 수업 내내 다툼이 있었고 결국 그 주민은 실습하는 한가운데로 와 훼방을 놓았다고. 이미 밭이 이상한 모양으로 파헤쳐져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던 H와 K 는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그리고 이정도로 주민들과 소통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밭을 사용하는 의미가 무엇인가, 윤리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 부분인가 고민하고 실습을 포기하기로 한다. 설명을 들은 지 5분도 되지 않아 나 또한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고 부끄러웠다. 들인 돈이 아까워서 그리고 돈을 냈으니 밭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우리를 쫓아낸 밭 주인과 무엇이 다른가? 그리고 집앞 공터를 가꾸던 주민을 공기관의 힘으로 무시하고 사업의 터로 사용하는 단체의 행동은 주민들의 의사와 항의를 무시한 채 개발을 하거나 쫓아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런 기본적인 감수성이 없는 도시농부활동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한 순간에 둥싯, 떠오르는 수십개 물을표들을 하나하나 끄집어 내리며 올 해 텃밭의 터를, 올해의 봄을, 다시 찾기 시작한다.  

 

  


1 2 3 4 5 6 7 8 9 10 다음

최근 포토로그

.